오키나와가 일본 본토와 사이가 안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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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왕국이었으며 동북아와 동남아 사이에 위치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함.
그러다 1879년 일본 영토에 강제 편입
일본 본토인들에게 오랜 차별을 겪은 오키나와인들은 아직도 일본 본토인들에게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일 뿐이다" 등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중.
오키나와인들도 류큐인 혹은 류큐계 일본인이라고 본인들을 소개하는 등 일본 본토인과 거리를 둠.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이자 오키나와인들이 특히 분노하는 역사적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키니와 집단 자결 사건
과거 미국과의 전쟁에서 일본의 절대국방권이 뚫리자 오키나와인들이 배신할것을 우려한 일본군이
오키나와인들에게 집단자결을 지시함
현재까지 밝혀진것만 오키나와인 최소 9만 4천명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자살 당함
독극물, 수류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결하게 했으며, 부모가 자식들을 죽이게도 함
반항하면 어차피 일본군에 의해 사살
이 사건 후 뿌리 깊은 갈등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
오키나와에는 총 1만~1만 5천명 정도의 조선인과 조선인 위안부들이 강제로 끌려가 일했는데
하필 난징대학살을 주도한 우시지마 미츠루가 사령관이라 더더욱 심하게 당함
오키나와인 증언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30m 깊은 지하 참호에서 햇빛도 거의 못보고 개보다도 못한 생활을 했으며
일본군은 심심하면 조선인에게 구덩이 파게 한 뒤 총으로 쏴서 죽인 후 자연스럽게 그 구덩이로 떨어지게 하는
놀이를 했다고 함
불쌍히 여긴 오키나와 주민들이 몰래 먹을것을 챙겨주기도 했다고 함. 이때 조선인들과 많은 교류를 함
오키나와 상징물 중 하나인 슈리성도 조선인이 건설
10년전까진 희생된 조선인에 대한 추모 의미로 학생들이 접은 종이학들과 추모 행사가 열렸으나
일본 극우 정권이 출범한 후 모두 강제로 사라짐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 극우 정당인 자민당이 패배하는 대표적인 지역
일본의 경제 보복 후 일본 여행이 뚝 끊기며 한국인이 먹여살리던 대마도는 2019년 11월 기준 전년도
대비 관광객 90% 감소
결국 일본 정부에서 며칠전 대마도 긴급지원 발표. 역시 한국인이 많이 먹여살리던 큐슈와 훗카이도도 지원 임박함
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국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답변할 정도로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킹시국이라 오키나와 관광도 많이 끊김
그러나 오키나와인들은 일본 본토인들과 달리 일본 정부 탓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함. 위의 역사적 이유 때문
아무로 나미에, 아라카키 유이 등 오키나와 출신 대표적인 연예인들은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 제창도 거부
그 후 일본 우익 등에게 많은 불이익을 당했다고 함
일본은 UN의 권고에도 아이누족과 달리 류큐인은 소수민족으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음.
독립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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