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경고 (지인에게 들은 충청남도 도깨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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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촬영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성준일’이란 형에게 직접 들은 기이한 이야기다.
1975년 충청남도 청양의 한 마을. 성문수는 건넛마을에 잔치가 있어서 막걸리를 잔뜩 먹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하며 걷고 있었는데, 웬 꼬마가 논에서 울부짖는 게 아닌가?
“아가, 논바닥에서 왜 우는 거여?”
“아저씨, 새끼줄이 발에 엉켰는데, 안 풀어져요.”
성문수는 작업장에서 쓰는 칼로 새끼줄을 끊어 주었다. 문제는 아이가 자꾸 쫓아왔다.
“아저씨 배가 고파요… 손에 든 음식 좀 주시면 안 돼요?”
집에 있는 아이들을 주려고 했는데, 딱한 생각에 잔칫집에서 받은 수육과 육전을 줬다.
아이는 게걸스럽게 먹었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혼자서 싹 비웠다.
“다 먹었으면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 우리 집에서 자고 날 밝으면 너희 집으로 가.”
성문수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정자나무를 지나 50미터 정도를 걸으면 집이 나왔는데,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였다.
더욱 당황스러운 일은 아이의 손이 얼음처럼 찼다.
“어린 것이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손이 차냐? 조금만 기다려라, 집에 거의 다 도착하긴 했는데… 왜 이렇게 안 나온데?”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 나가는 지인이 아는 척했다.
“준배 아버지, 이른 아침부터 어디가는 겨?”
“나? 건너 마을에 잔칫집에 갔다가 이제 오지.”
“그런데… 손에 호미는 뭐여?”
“호미는 무슨 호미?”
아이의 손이 있어야 하는데, 호미만 있었다.
그제야 뒷골이 서늘해져서 냅다 호미를 논에 던졌다. 어머니는 도깨비에 홀린 거라며 걱정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술이 덜 깬 상태로 방앗간으로 출근했는데, 주문이 쏟아졌다.
청양은 물론이고 공주, 부여 등 많은 이들이 고춧가루부터 참기름, 온갖 떡을 주문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착한 도깨비를 만났다며, 수육과 막걸리를 싸주며 감사 인사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태어나서 이토록 거대한 수익은 처음 경험했기에 밤이 되자마자 논으로 갔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 논바닥에 수육을 두고, 막걸리를 뿌리려는데…
“에헤이… 아저씨, 그 비싼 술을 어디에 뿌리는 거래요?”
1970년도에 갓을 쓴 젊은 남자가 나타나 손목을 잡았다.
성 문수는 그의 손이 무진장 차가워 도깨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모습만 변해있었지, 아이 때의 얼굴 그대로였다.
“자네, 돗까비지? 돗까비 맞잖여?”
“그건 뭐 알아서 생각하시고 앉아서 같이 들어요.”
같이 먹자고 했지만, 술과 고기를 혼자서 또 게걸스럽게 먹어서 그 모습을 보기만 했다.
“매번 아저씨한테 얻어먹으니 미안하네? 사실 오늘은 얻어먹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아저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아저씨 첫째 있지유? 그 뭐라더라 준배였나?”
“자네가 우리 장남 이름은 어떻게 아는 겨?”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들어봐유. 준배가 말이어유? 지금 아주 못된 것한테 홀렸어유.
문제는 뭐냐면 나가 구해줄 수 없는 존재한테 홀리 거유. 아저씨가 구해야 한단 말이여!“
“그게 무슨소리여? 우리 준배가 못된 것한테 홀렸다니?”
“자세한 걸 알려주면 시커먼 놈들한테 혼이 나니까, 이 정도로만 합시다. 아저씨 내 말 명심해요.”
갑자기 도깨비가 푸른 불꽃으로 변하더니, 공중을 빙빙 돌다가 사라졌다.
장남이 못된 것에게 홀렸다고 하니, 집으로 달려갔다.
장남은 11살로 맨날 놀 생각만 하는 철부지였다.
아내에게 요즘 장남이 뭐 하냐고 물으니, 별것 없다는 소리나 할 뿐이었다.
성문수는 도깨비의 말이 거슬려서, 아들을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먹을 것부터 돈이나 패물 등이 없어지는 일이 생겼다.
사람들은 신고도 했지만, 경찰이 와도 범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달걀이며, 먹을 것이 없어졌다며 난리를 쳤다.
이쯤 되니 도깨비에게 묻고 싶어진 성문수가 수육과 막걸리를 준비해서 논을 찾았다.
하지만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실망에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 누군가가 집에서 급하게 나오는 걸 발견했다.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빠르게 징검다리를 건너 하천을 건넜다.
“뭐여, 도둑이여? 내가 잡아서 혼쭐을 낼 겨.”
성문수는 뒤를 쫓았다. 도둑은 하천이 흘러오는 길을 따라가 둑이 있는 곳까지 올랐다.
사람들이 귀신이 나온다며, 가지도 않는 장소였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니, 처음 보는 오두막 하나가 나왔고, 하천이 흐르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을 피우며 떠들었다.
집에서 나온 도둑도 그곳에 앉았다.
성문수는 깜짝 놀랐다. 도둑이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마을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들은 집에서 가져온 달걀과 참기름을 어떤 사내에게 보이며 웃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커다란 양푼에 넣었다.
어떤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옷이나 돈을 사내에게 건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내가 아이들이 가져온 음식을 비빈 후 먹으려고 할 때였다. 성문수가 소리쳤다.
“여기서 뭐하는 겨? 마을 사람들 물건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범인이 너희들이었구먼? 그리고 당신은 누구여? 뭐하는 사람이래?”
사내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폐가 안 좋아서 여기에 집을 짓고 쉬는 사람인데요. 우연히 아이들과 친해져서 이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성문수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조심스레 말했다.
“늦은 시간이잖아유. 그리고 여기 물이 얼마나 깊은데요, 애들 불러내면 위험하기도 하고… 여기서 사람이 여럿 빠져 죽었슈.”
성문수는 낮에 이야기하자며,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냈다.
장남은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이고, 아이들끼리 노는 것이 뭐가 잘못됐냐고 따졌지만,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을 어쩌다 알게 된 겨?”
“애들이랑 콩 구워 먹으러 가다가 만났어. 아저씨는 논바닥에서 개구리 잡는 중이었고…
아버지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 아니여. 폐병도 거의 나았어. 성치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을 도운 것인데, 나쁘게 생각하지 말어.”
다음 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니 사내가 있는 곳에 가보자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추운 겨울에 폐병 걸린 환자가 물 옆에 사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긴 것도 폐병을 앓았다고 하기에는 말끔했다.
남자는 밥을 먹고 있었다. 귀하디귀한 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태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을 분들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장이 언성을 높혔다.
“그 라면 말이여, 어디서 났슈? 혹시 애들이 가져온 걸 홀라당 끓여 먹은 거 아니쥬?”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닌데, 영철이가 먹어도 된다고 해서요. 염치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죄송합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요. 몸이 회복되면 꼭 갚겠습니다.”
그때 라면의 주인인 완희 엄마가 괜찮다며 말했고, 연이어 동네 아줌마들도 별 거 아니라고 했다.
“아니, 뭘 갚아요. 그냥 드세요.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네? 돌아 갑시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네? 유난 떨지 말고 갑시다.“
성문수는 갑자기 무서웠다. 갑자기 그녀들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홀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쌍한 사람은 그냥 두자며 내려가자고 했다. 그러던 중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처음 도깨비를 만났을 때 보았던 거무튀튀한 새끼줄이었다.
“이보시게, 이게 뭐여?”
“새끼줄을 쓸 곳이 있어서요.”
줄에는 성문수가 칼로 벤 자국이 있었다. 이상한 기분에 오두막 문을 열자, 경악하고 말았다.
책상 위에는 또 다른 새끼줄이 있었는데, 호미가 감겨 있었다. 그것이 도깨비라고 확신했다.
놈에게 잡혀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들고 나가려는데, 사내가 막았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자네야 말로 뭐하는 가? 이게 뭔지 모르나?”
“이게 뭔데유?”
“하…, 이거 큰일 날 양반이네?”
사람들은 뭐냐고 물었다. 성문수는 답하지도 않고, 사내의 방을 뒤졌다.
침대 아래에 있는 바구니에서 무당들이 쓰는 칼과 짚으로 만든 인형이 나왔고,
벽에 걸린 하얀 비단 치우니, 새빨간 옷이 나왔다.
아주 못된 것이 아들을 노릴 거라는 도깨비의 말이 생각났다.
무속에 관한 것은 잘 모르지만, 거무 튀튀한 새끼 줄은 도깨비를 잡는 덫이 분명했다.
“이게 무엇이여? 자네 무당이여? 무당이 여기는 왜 온 건데?”
성문수가 몰아붙이자, 그제야 사람들도 물었다. 사내는 호미를 빼앗으려는 행동을 멈췄다.
“하…. 사실 저는 아 마을에 도깨비를 잡기 위해 온 무당입니다.
이 새끼 줄은 도깨비를 잡기 위해 팥죽을 먹인 덫인데, 인간에게는 백해무익한 물건입니다.
도깨비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존재이기에 잡아야 합니다.
지금 준배 아버님이 들고 계신 호미가 도깨비인데, 최근에 제가 잡은 것입니다.”
도깨비란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깨비를 잡았으면 마을을 떠날 것이지, 아이들한테 왜 도둑질을 시켰데유?”
사내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도깨비 잡으러 왔는데, 돈이 없잖아요. 그리고 도둑질이 아니라, 여유가 되면 갚으려고 했습니다.
만약 무당이 새끼줄을 써서 도깨비 잡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저는 여러분을 도우려고 왔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이장이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어이 준배 아부지, 호미 돌려줘.”
“네?”
“어혀 돌려줘. 그 호미가 자네꺼여?”
호미를 주기 싫었지만, 이장이 강제로 호미를 뺏어 사내에게 주고 말았다.
“자네도 호미를 받았으니, 이만 가봐.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말게.”
사내가 부랴부랴 짐을 챙긴 후 떠나자, 이장은 오두막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불이 타오르고 마을 사람들은 사내가 가는 것을 지켜봤다.
성문수가 찝찝한 마음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사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보통 신빨 떨어진 무당이 도깨비를 잡으려고 새끼줄에 팥죽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문수가 뒤늦게 사내를 쫓았지만, 이미 떠난 후였다.
소동은 금방 잠잠해졌다.
늦은 봄에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 성문수의 방앗간에 벼락이 맞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지붕이 주저앉았다.
설상가상, 성문수의 집에는 하천이 범람해서 물에 잠겼다.
성문수와 가족들은 어렵게 마을회관으로 대피했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하늘이 무심하다고 했다.
며칠 후, 무너진 집을 고치러 마을 청년들과 향하던 때였다. 몇몇이 이상한 말을 했다.
“너네 들었어? 찬영이 형이 말이여, 읍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묘지가 있는 언덕에서
무당이 칼을 들고 방방 뛰고 있더라는 겨. 그때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폭우가 내렸다는 거 아니여?”
“참말이여?”
“근데 말이여, 찬형이 형이 그러는데… 무당이 하천 제방에서 집을 짓고 사는 사내였다면서 마을에 복수를 한 거래.”
“에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걸 믿어. 일이나 혀.”
“아니, 참말이라니까? 마을 사람 몇이 윤화 아씨라는 유명한 무당에게 사내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놈은 상종도 하면 안 될 무당이래.”
“도대체 정체가 뭔데? 상종을 하지마?”
“어린아이들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는 놈이라나?”
성문수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날에 마을회관에 있던 장남이 사라졌다.
다시 말해서 성준일의 큰아버지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 외부펌을 금지합니다.
1975년 충청남도 청양의 한 마을. 성문수는 건넛마을에 잔치가 있어서 막걸리를 잔뜩 먹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하며 걷고 있었는데, 웬 꼬마가 논에서 울부짖는 게 아닌가?
“아가, 논바닥에서 왜 우는 거여?”
“아저씨, 새끼줄이 발에 엉켰는데, 안 풀어져요.”
성문수는 작업장에서 쓰는 칼로 새끼줄을 끊어 주었다. 문제는 아이가 자꾸 쫓아왔다.
“아저씨 배가 고파요… 손에 든 음식 좀 주시면 안 돼요?”
집에 있는 아이들을 주려고 했는데, 딱한 생각에 잔칫집에서 받은 수육과 육전을 줬다.
아이는 게걸스럽게 먹었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혼자서 싹 비웠다.
“다 먹었으면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 우리 집에서 자고 날 밝으면 너희 집으로 가.”
성문수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정자나무를 지나 50미터 정도를 걸으면 집이 나왔는데,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였다.
더욱 당황스러운 일은 아이의 손이 얼음처럼 찼다.
“어린 것이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손이 차냐? 조금만 기다려라, 집에 거의 다 도착하긴 했는데… 왜 이렇게 안 나온데?”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 나가는 지인이 아는 척했다.
“준배 아버지, 이른 아침부터 어디가는 겨?”
“나? 건너 마을에 잔칫집에 갔다가 이제 오지.”
“그런데… 손에 호미는 뭐여?”
“호미는 무슨 호미?”
아이의 손이 있어야 하는데, 호미만 있었다.
그제야 뒷골이 서늘해져서 냅다 호미를 논에 던졌다. 어머니는 도깨비에 홀린 거라며 걱정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술이 덜 깬 상태로 방앗간으로 출근했는데, 주문이 쏟아졌다.
청양은 물론이고 공주, 부여 등 많은 이들이 고춧가루부터 참기름, 온갖 떡을 주문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착한 도깨비를 만났다며, 수육과 막걸리를 싸주며 감사 인사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태어나서 이토록 거대한 수익은 처음 경험했기에 밤이 되자마자 논으로 갔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 논바닥에 수육을 두고, 막걸리를 뿌리려는데…
“에헤이… 아저씨, 그 비싼 술을 어디에 뿌리는 거래요?”
1970년도에 갓을 쓴 젊은 남자가 나타나 손목을 잡았다.
성 문수는 그의 손이 무진장 차가워 도깨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모습만 변해있었지, 아이 때의 얼굴 그대로였다.
“자네, 돗까비지? 돗까비 맞잖여?”
“그건 뭐 알아서 생각하시고 앉아서 같이 들어요.”
같이 먹자고 했지만, 술과 고기를 혼자서 또 게걸스럽게 먹어서 그 모습을 보기만 했다.
“매번 아저씨한테 얻어먹으니 미안하네? 사실 오늘은 얻어먹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아저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아저씨 첫째 있지유? 그 뭐라더라 준배였나?”
“자네가 우리 장남 이름은 어떻게 아는 겨?”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들어봐유. 준배가 말이어유? 지금 아주 못된 것한테 홀렸어유.
문제는 뭐냐면 나가 구해줄 수 없는 존재한테 홀리 거유. 아저씨가 구해야 한단 말이여!“
“그게 무슨소리여? 우리 준배가 못된 것한테 홀렸다니?”
“자세한 걸 알려주면 시커먼 놈들한테 혼이 나니까, 이 정도로만 합시다. 아저씨 내 말 명심해요.”
갑자기 도깨비가 푸른 불꽃으로 변하더니, 공중을 빙빙 돌다가 사라졌다.
장남이 못된 것에게 홀렸다고 하니, 집으로 달려갔다.
장남은 11살로 맨날 놀 생각만 하는 철부지였다.
아내에게 요즘 장남이 뭐 하냐고 물으니, 별것 없다는 소리나 할 뿐이었다.
성문수는 도깨비의 말이 거슬려서, 아들을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먹을 것부터 돈이나 패물 등이 없어지는 일이 생겼다.
사람들은 신고도 했지만, 경찰이 와도 범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달걀이며, 먹을 것이 없어졌다며 난리를 쳤다.
이쯤 되니 도깨비에게 묻고 싶어진 성문수가 수육과 막걸리를 준비해서 논을 찾았다.
하지만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실망에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 누군가가 집에서 급하게 나오는 걸 발견했다.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빠르게 징검다리를 건너 하천을 건넜다.
“뭐여, 도둑이여? 내가 잡아서 혼쭐을 낼 겨.”
성문수는 뒤를 쫓았다. 도둑은 하천이 흘러오는 길을 따라가 둑이 있는 곳까지 올랐다.
사람들이 귀신이 나온다며, 가지도 않는 장소였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니, 처음 보는 오두막 하나가 나왔고, 하천이 흐르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을 피우며 떠들었다.
집에서 나온 도둑도 그곳에 앉았다.
성문수는 깜짝 놀랐다. 도둑이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마을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들은 집에서 가져온 달걀과 참기름을 어떤 사내에게 보이며 웃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커다란 양푼에 넣었다.
어떤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옷이나 돈을 사내에게 건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내가 아이들이 가져온 음식을 비빈 후 먹으려고 할 때였다. 성문수가 소리쳤다.
“여기서 뭐하는 겨? 마을 사람들 물건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범인이 너희들이었구먼? 그리고 당신은 누구여? 뭐하는 사람이래?”
사내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폐가 안 좋아서 여기에 집을 짓고 쉬는 사람인데요. 우연히 아이들과 친해져서 이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성문수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조심스레 말했다.
“늦은 시간이잖아유. 그리고 여기 물이 얼마나 깊은데요, 애들 불러내면 위험하기도 하고… 여기서 사람이 여럿 빠져 죽었슈.”
성문수는 낮에 이야기하자며,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냈다.
장남은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이고, 아이들끼리 노는 것이 뭐가 잘못됐냐고 따졌지만,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을 어쩌다 알게 된 겨?”
“애들이랑 콩 구워 먹으러 가다가 만났어. 아저씨는 논바닥에서 개구리 잡는 중이었고…
아버지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 아니여. 폐병도 거의 나았어. 성치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을 도운 것인데, 나쁘게 생각하지 말어.”
다음 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니 사내가 있는 곳에 가보자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추운 겨울에 폐병 걸린 환자가 물 옆에 사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긴 것도 폐병을 앓았다고 하기에는 말끔했다.
남자는 밥을 먹고 있었다. 귀하디귀한 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태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을 분들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장이 언성을 높혔다.
“그 라면 말이여, 어디서 났슈? 혹시 애들이 가져온 걸 홀라당 끓여 먹은 거 아니쥬?”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닌데, 영철이가 먹어도 된다고 해서요. 염치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죄송합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요. 몸이 회복되면 꼭 갚겠습니다.”
그때 라면의 주인인 완희 엄마가 괜찮다며 말했고, 연이어 동네 아줌마들도 별 거 아니라고 했다.
“아니, 뭘 갚아요. 그냥 드세요.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네? 돌아 갑시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네? 유난 떨지 말고 갑시다.“
성문수는 갑자기 무서웠다. 갑자기 그녀들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홀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쌍한 사람은 그냥 두자며 내려가자고 했다. 그러던 중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처음 도깨비를 만났을 때 보았던 거무튀튀한 새끼줄이었다.
“이보시게, 이게 뭐여?”
“새끼줄을 쓸 곳이 있어서요.”
줄에는 성문수가 칼로 벤 자국이 있었다. 이상한 기분에 오두막 문을 열자, 경악하고 말았다.
책상 위에는 또 다른 새끼줄이 있었는데, 호미가 감겨 있었다. 그것이 도깨비라고 확신했다.
놈에게 잡혀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들고 나가려는데, 사내가 막았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자네야 말로 뭐하는 가? 이게 뭔지 모르나?”
“이게 뭔데유?”
“하…, 이거 큰일 날 양반이네?”
사람들은 뭐냐고 물었다. 성문수는 답하지도 않고, 사내의 방을 뒤졌다.
침대 아래에 있는 바구니에서 무당들이 쓰는 칼과 짚으로 만든 인형이 나왔고,
벽에 걸린 하얀 비단 치우니, 새빨간 옷이 나왔다.
아주 못된 것이 아들을 노릴 거라는 도깨비의 말이 생각났다.
무속에 관한 것은 잘 모르지만, 거무 튀튀한 새끼 줄은 도깨비를 잡는 덫이 분명했다.
“이게 무엇이여? 자네 무당이여? 무당이 여기는 왜 온 건데?”
성문수가 몰아붙이자, 그제야 사람들도 물었다. 사내는 호미를 빼앗으려는 행동을 멈췄다.
“하…. 사실 저는 아 마을에 도깨비를 잡기 위해 온 무당입니다.
이 새끼 줄은 도깨비를 잡기 위해 팥죽을 먹인 덫인데, 인간에게는 백해무익한 물건입니다.
도깨비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존재이기에 잡아야 합니다.
지금 준배 아버님이 들고 계신 호미가 도깨비인데, 최근에 제가 잡은 것입니다.”
도깨비란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깨비를 잡았으면 마을을 떠날 것이지, 아이들한테 왜 도둑질을 시켰데유?”
사내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도깨비 잡으러 왔는데, 돈이 없잖아요. 그리고 도둑질이 아니라, 여유가 되면 갚으려고 했습니다.
만약 무당이 새끼줄을 써서 도깨비 잡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저는 여러분을 도우려고 왔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이장이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어이 준배 아부지, 호미 돌려줘.”
“네?”
“어혀 돌려줘. 그 호미가 자네꺼여?”
호미를 주기 싫었지만, 이장이 강제로 호미를 뺏어 사내에게 주고 말았다.
“자네도 호미를 받았으니, 이만 가봐.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말게.”
사내가 부랴부랴 짐을 챙긴 후 떠나자, 이장은 오두막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불이 타오르고 마을 사람들은 사내가 가는 것을 지켜봤다.
성문수가 찝찝한 마음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사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보통 신빨 떨어진 무당이 도깨비를 잡으려고 새끼줄에 팥죽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문수가 뒤늦게 사내를 쫓았지만, 이미 떠난 후였다.
소동은 금방 잠잠해졌다.
늦은 봄에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 성문수의 방앗간에 벼락이 맞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지붕이 주저앉았다.
설상가상, 성문수의 집에는 하천이 범람해서 물에 잠겼다.
성문수와 가족들은 어렵게 마을회관으로 대피했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하늘이 무심하다고 했다.
며칠 후, 무너진 집을 고치러 마을 청년들과 향하던 때였다. 몇몇이 이상한 말을 했다.
“너네 들었어? 찬영이 형이 말이여, 읍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묘지가 있는 언덕에서
무당이 칼을 들고 방방 뛰고 있더라는 겨. 그때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폭우가 내렸다는 거 아니여?”
“참말이여?”
“근데 말이여, 찬형이 형이 그러는데… 무당이 하천 제방에서 집을 짓고 사는 사내였다면서 마을에 복수를 한 거래.”
“에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걸 믿어. 일이나 혀.”
“아니, 참말이라니까? 마을 사람 몇이 윤화 아씨라는 유명한 무당에게 사내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놈은 상종도 하면 안 될 무당이래.”
“도대체 정체가 뭔데? 상종을 하지마?”
“어린아이들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는 놈이라나?”
성문수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날에 마을회관에 있던 장남이 사라졌다.
다시 말해서 성준일의 큰아버지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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